책을 되새김질하다

자립인간

대빈창 2016. 8. 22. 05:28

 

 

책이름 : 자립인간

지은이 : 변현단

펴낸곳 : 이담북스

 

미색의 표지 바탕에 머리띠로 ‘알맞게 욕구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를 멨고, 고건축물 편액처럼 세로로  『자립인간』이 걸렸다. 밀짚모자를 쓴 실루엣이 두 손으로 삽자루를 움켜쥐고, 먼산바라기를 하였다. 하단에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이 먹었다’라는 구호가 박혔다. 겉표지를 벗기자 흰 바탕에 한자로 자(自)는 조루를 들고 물을 주는 농부가 한 변을. 립(立)은 삽으로 땅을 파는 농부가 한 변을. 인(人)은 기둥에 못을 박는 농부가 한 변을. 간(間)은 겉표지의 삽자루에 기대 휴식을 취하는 농부가 한 변을 차지했다. 왜 농부여만 하느냐고 따지면 할 말은 없다. 농사운동가인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농’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생산품이며 직접적인 것, 다른 것들과 달리 화폐로 전환되지 않고도 바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농’은 인간을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소외시키지도 않고 왕따 당하게 하지도 않는다. ‘농’은 진정 우리를 살리는 보루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自立人間은 농부일 수밖에 없다.

“‘돈’으로 대변되는 현대 산업사회의 편리성과 단속성, 금융 자본주의 체제 속의 허구적 삶, 국가의 간섭과 구속, 사회 윤리 등이 개인과 부부. 가족, 마을공동체의 삶에 뼛속 깊이 관여하고 결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시스템에 연결고리를 끊을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삶”(29쪽)은 가능하다. 인간 본래의 자연스러운 삶은 ‘식주의 자립’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은 생태순환적인 자연을 닮은 농부일 수밖에 없다. 자급농사는 자신이 먹을 것은 최대한 자신의 농사로 확보하여 최소한의 화폐로 살아가는 것이다.

집은 자연재해를 피해 몸을 가리는 곳으로 생태적 자립을 꿈꾸며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자연에 위배되지 않는 소박한 집이 당연하다. 즉 집은 권력과 부를 자랑하는 사치스럽게 치장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선조의 생태적 순환적인 삶을 지속불가능한 생활양식으로 단절시켰다. 잡초를 제거한다고 제초제를 뿌리고, 정화조를 설치하여 오폐수를 마구 쏟아내고, 화학물질 덩어리의 일상적 삶은 나 혼자 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생명의 고향인 지구를 생존 위험에 빠뜨렸다. 낮에는 농사짓는 농부로, 밤에는 글을 짓는 작가에게 지구를 살리는 길은 노인들이 아직 살아계실 때 시골에 터를 잡고 자연에 몸을 의탁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이었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만이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할 것이다. 나는 5년후 自立人間을 꿈꾸고 있다. 다랑구지 1300평을 우렁이농법과 직파재배로 농기계없이 쌀을 생산할 것이다. 강화도의 평균 단수는 300평당 쌀 6가마다. 자연농법으로 단수의 반만 수확해도 1사람당 1년 쌀소비를 80kg 한 가마로 잡으면 3가구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생산량이다. 지금 텃밭 40평에서 수확하는 채소로 3형제의 찬을 충분히 댄다. 섬의 주택개량사업으로 83년도에 지은 단독주택은 아주 낡았다. 살아가면서 이곳저곳 손을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새 옷에 별로 관심이 없다. 섬 생활은 의상에 신경쓸 일이 없다. 양말, 속옷은 구멍이 나고 찢어져야 버렸다. 옷도 10년 이상을 입었다. 어머니가 흉하다고 타박을 놓을 정도다. 나는 준비된 자립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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