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구지 6

논 세 필지

바야흐로 절기는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이다. 지난겨울은 눈도 많았고, 기온이 크게 떨어진 날이 며칠이고 계속되어 동장군이 기세를 떨쳤다. 겨우내 땅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흙살이 부드러워졌을 것이다. 이미지는 대빈창 다랑구지 들녘이다. 나는 지주地主였다. 우리 논 세 필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899㎡, 2582㎡. 783㎡. 10평이 부족한 1,300평이었다. 며칠 전부터 우리 논을 부칠 마음을 드러냈던 배너미 형님 댁을 찾아갔다. 문이 잠겼다. 전화를 넣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뭍에 출타중이었다. “형님이 우리 논 부치시죠” 작년까지 논을 부치던 뒷집 형이 쓰러져 대처의 대학병원에 입원한 지가 반년이 흘렀고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났다. ..

묵정논

들판 한가운데 / 몇 년 동안 묵은 논이 붐비기 시작했다 / 사람 손길이 끊기고 잡초 무성한 묵정논이 되었다고 모두들 혀를 찼는데 / 어느새 뭇 생명들의 피난처가 되어 있었다 / 온갖 농약의 융단폭격을 피해 숨어드는 / 들판의 유일한 방공호였다 / 일 년 내내 붐볐다 / 처음엔 작은 날벌레들이 잉잉거렸고 / 나중엔 너구리와 고라니가 뛰고 굴을 팠다 / 능수버들이 우거지고 / 백로와 왜가리가 둥지를 틀었다 / 으슥한 밤 은밀하게 꿈틀거리는 것들, / 교미하는 무자치 박새 물오리의 빛나는 몸과 젖은 눈을 훔쳐봤다 / 방공호에서 몸을 섞는 것들은 슬펐다 / 맹꽁이가 알을 슬고 꽃가루가 날렸다 / 장마 끝에 온갖 벌레와 곤충이 울었고 처음 보는 꽃들이 은하수처럼 무더기무더기로 흘러갔다 / 사라졌던 것들이 짝을 ..

우禹 임금도 어쩔 수 없다.

중국 신화시대 하(夏)나라의 시조 우(禹) 임금은 황하의 치수를 잘한 덕에 순(舜)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판 우(禹) 임금이 주문도에 나타나도 어쩔 수 없이 담수를 바다로 쏟아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문도(注文島)는 강화도의 부속도서로 면적이 4.31㎢밖에 되지 않는 작은 외딴 섬입니다. 주문도의 논 면적은 114ha 입니다. 자연부락 느리와 진말의 경계지점 고갯길의 주문도저수지 물은 진말 앞 벌판으로 흘러 내립니다. 저수지는 섬에 쏟아진 빗물이 고인 제방 밑 수로의 물을 거꾸로 퍼 올릴 수 있는 양수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올여름은 기상청 관측이래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뭄이 지속되었습니다. 느리와 대빈창 마을을 마주보는 들녘은 60여 년 전 바다를 막은 간척으로 이루어진 다랑구지입니다..

다랑구지가 타들어가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폭염 일수는 정확히 30일을 채웠고, 열대야는 26일째 지속중입니다. 우리나라만이 겪는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유럽,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북반구 일대가 온통 불덩어리입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지 모르겠습니다. 기후학자들은 현재의 기후변화가 지속되어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구의 자정작용이 멈추고, 인류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어쩔 수없이 파국으로 치닫는 시기가 가까웠다고 경고합니다. 그린란드의 빙하가 사라지면 멕시코 난류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더 많은 열을 받은 남빙양은 남극 빙하를 녹이고.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메탄가스가 풀려나와 지구온난화에 가속도가 붙는. 자연현상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지구가 탄소를 흡..

대빈창 다랑구지의 가을걷이

열흘의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위 이미지는 연휴의 막바지 대빈창 다랑구지의 이른 아침 풍경입니다. 평소처럼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봉구산 자락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로에서 바라 본 들녘입니다. 아침 해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봉구산을 넘어 온 햇살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해병대 순찰차량이 해안을 향해 중앙농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대략 시간은 7시경입니다. 산자락 밭의 김장채소가 푸르렀습니다. 배추는 속이 차가고, 무는 밑동이 튼실하게 여물었습니다. 밭 모서리마다 들깨 단이 묶여 세워졌습니다. 순을 제거하고 고구마를 캐느라 추석을 맞아 고향 섬을 찾은 가족들이 밭에 허리를 굽혔습니다. 고춧대도 뽑아서 밭 한편에 쌓았습니다. 날씨가 차지면 바람 없는 날을 잡아 소각시키겠지요. 바다..

다랑구지를 아시나요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되어있는 좁고 긴 논'을 다랑논이라고 합니다. 다랑논의 지역 사투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다랭이, 다랑치, 다랭이 논, 삿갓배미, 다락배미, 다락 논... 등등.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에서는 '다랑구지'라 부릅니다. 제가 사전적 의미의 진짜 다랑구지를 본 것은 15여년전 지리산 자락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던 중 피아골의 연곡사를 찾아가던 길 이었습니다. 그때 교통이 불편한 산골 마을에서 편의를 봐준 당치마을 이정운 이장님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장님은 두 가지 얘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하나는 피아골의 단풍이 유난히 붉은 것은 빨치산의 피가 배어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피아골 삿갓배미의 유래 입니다. '옛날 한 농부가 김매기를 하다 쉬던 중 자기 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