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소피아 로렌의 시간

대빈창 2021. 8. 6. 07:00

 

책이름 : 소피아 로렌의 시간

지은이 : 기혁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제3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민음사, 2014)가 눈에 띄었다. 2010년 『시인세계』의 시 부문과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등단한 시인·문학평론가 기혁의 첫 시집이었다. 시집은 품절이었다. 나는 아쉬운 대로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손에 넣었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65시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은 해설 「권태의 고고학 - 희망을 기억하는 기술」에서 “전 지구적으로 뻗은 문명적 촉수는 또 다른 장소와 시간과 사물을 지시하며 연관을 맺고 있다. 타버린 도시의 폐허에 남은 그을음처럼, 세계는 지금 여기가 유일한 시간이 아님을 다만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여기는 지나간 시간의 잔해다.”라고 말했다.

시편들은 3줄짜리 「지구」에서 11쪽짜리 장시長詩 「입 속의 검은 잎」까지 다양했다. 요절한 시인의 유일한 시집 표제를 제목으로 삼은 시의 부제는 ‘고스트 라이터, 그리고 기형도 시인에게’였다. 마지막 시 「고급 독자」의 부제는 ‘고스트 라이터, 그리고 평론가에게’였다.

 

*1934년 여름 스웨덴의 고고학자 폴크 베르만Folke Bergman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탐사하던 중 머리카락과 눈썹이 그대로 보존된 청동기 시대의 미라를 발견한다. 중국에서 발견된 백인 미라로서 소하공주小河公主 또는 소하미녀小河美女로 알려졌다. 그녀의 가슴팍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치즈 덩이가 안겨 있었다. 같은 해 가을 이탈리아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이 태어났고, 후대의 연구자들이 미라에 배우의 이름을 딴 별명을 붙였다. 그녀의 배우자가 사망한 현재까지도 소피아 로렌은 생존 중이다.

 

표제작이면서 첫시 「소피아 로렌의 시간」에 덧붙인 글의 전문이다. 시집 속 ‘소피아 로렌’은 이탈리아 글래머 여배우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이 아닌 사막에서 발견된 미라였다. 시인이 바라보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미라를 닮았다. 마지막은 헌사獻詞로 쓰인 이집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의 말이다.

 

“시간은 조그맣고 친밀한 물품들에 의해 소멸되어버리고 그대는 스스로를 침입자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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