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김 박사는 누구인가?
지은이 : 이기호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최순덕 성령충만기(2004년, 문학과지성사)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2006년, 문학동네)
사과는 잘해요(2009년, 현대문학)
김 박사는 누구인가?(2013년, 문학과지성사)
내 책장에 줄지어 선 작가 이기호의 책들이다.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되었다. 시인 함민복의 집에 들렀다가 책을 얻었다. 시인과 작가의 관계는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의 리뷰에서 밝혔다. 온라인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 막상 활자화되자 나의 손길은 굼뜨기 그지없었다. 여적 책갈피를 들썩이지 않았다. 그런데 기다리던 세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작가의 재치와 유머, 입담이 버무려진 글들은 중독성이 강하다. 그만큼 우리 시대의 재담꾼이라 불리는 작가의 소설은 경쾌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앞의 두 권의 소설집보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실린 글들은 경쾌하기보다 오히려 진중했다. 중편소설 「화라지송침」과 단편소설 7편 그리고 문학평론가 김동식의 해설 ‘이야기의 경계를 넘어, 이야기되지 않는 삶을 찾아서’가 묶인 책 부피는 두툼했다.
서툴고 어정쩡한 삶으로 여신 허방을 딛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우리는 안타까운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임시직 학적부 전산화 작업에 코를 멘 청년 실업자(행정동), 후진도 안 되는 고물차 프라이드와 연애하는 노총각 삼촌(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 제11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정신이상으로 김박사와 상담하는 교원임용고시 실패자(김 박사는 누구인가?), 각막이식수술을 준비하는 전도사의 위선적 믿음(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폭음으로 인한 우연치 않는 죽음으로 피의자로 구속된 제자를 탄원서로 구명하려는 대학교수(탄원의 문장), 양돈축사에서 구조된 현대판 노예(화라지송침), 트렁크 팬티와 반바지를 둘러 싼 에피소드(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
소설집의 작품 중 나는 「이정(而丁) -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2」에 눈길이 꽂혔다. 한과 공장에 다니는 최이정은 농촌진흥청에 근무하는 남편과 이혼하고 남매를 키웠다. 국립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들 수환이 장학금 혜택을 받으려고 ROTC 지원서를 내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개명(改名) 절차를 밟는다. 분단시대를 살아가면서 이름에 담긴 거대한 상징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정(而丁)은 ‘조선의 레닌’ 박헌영의 호다. 어머니는 박헌영이 죽은 1955년에 태어났는데, 남로당 계열 빨치산이었던 외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그때 외할아버지는 이미 전향을 했었다. 수환은 어머니의 개명 행정절차를 밟다가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어머니의 이름에 담긴 역사적 무게를 안 수환은 외할아버지의 삶을 복기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중환자실에 누운 수환을 외할아버지의 강동정치학원 동기생인 비전향 빨치산 김명국 노인이 찾아오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죽음을 기다리는 비전향 장기수의 말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 “그건 그냥 글자 그대로 보는 게 맞을 거라고 말해주었소. 그러니까 쇠스랑(而)과 망치(丁)가 맞을 거라고 ······ 우린 해석하기보단, 보이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었으니깐.”(257쪽) 나의 젊은 시절, 질풍노도의 시대 80년대. 김하기의 「살아있는 무덤」과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 그리고 권운상의 「녹슬은 해방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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