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8

후투티를 다시 만나다 - 3

아무리 무딘 이라도 한반도를 물구렁텅이로 만든 계묘년癸卯年 장마를 견디며 기후 재난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니 한반도 기후는 이제 온대가 아닌 아열대가 분명해졌다. 장마가 아닌 우기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비가 귀한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를 물폭탄이 공습했다. 비가 주춤거리는 틈에 저녁 산책에 나섰다. 섬 중앙에 솟은 해발 146m의 봉구산은 해변까지 자락을 드리웠다. 짧은 골짜기를 치내려온 빗물이 시멘트 구조물 노깡으로 세차게 쏟아졌다. 갯벌이 크게 파여 쓸려나갔다. 빗물을 머금은 산은 몇날며칠 담수를 바다로 흘려보낼 것이다. 갈매기 수십 마리가 담수에서 목을 축이고 깃을 다듬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새들은 인간보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대책을 강구할 수..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 )가 1970년에 발표한 우화소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갈매기 조너선은 본질적 삶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합니다. 일생동안 비행에 대한 꿈과 신념을 실현하고자 끝없이 노력합니다. 삶의 진리와 자기완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작품으로 누구나 귀에 익은 말입니다. 대기 중 습도가 높아 무더위가 여적 가시지 않았습니다. 절기는 입추를 지나 처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낮의 기온은 30℃ 넘어서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람에 선선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먼동이 터오며 밤새 진군한 안개가 서서히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산책은 일년 열두달 같은 길을 오고 갑니다. 대빈창 해변 솔숲..

그 많던 갈매기들은 다 어디 갔을까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춘분 무렵의 내가 외포항입니다. 주문도에서 이른 7시에 출항한 삼보 6호가 길게 휘어 돌며 외포항 선창에 접안 중입니다. 아침 9시 무렵입니다. 석모도 석포항 선창은 삼보6호의 덩치에 가렸습니다. 삼보 6호는 원래 외포항과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 보문사가 자리 잡은 석모도를 오가던 객선이었습니다. 작년 7월 내가 황청리와 석모도 공개를 연결하는 석모대교가 완공되었습니다. 삼보 6호는 졸지에 백수로 전락하였습니다. 내가 외포항과 서도(西島)를 오가던 도선은 삼보 12호입니다. 올겨울 유다른 한파와 유빙에 시달린 삼보12호는 보름 넘게 입원하여 몸을 추스르는 중입니다. 삼보 6호가 대신 낯선 항로에 투입되어 열심입니다. 삼보 6호는 거리가 가까운 섬을 오가던 객선답게 사람보다 차량이..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책이름 :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지은이 : 김성규펴낸곳 : 창비 책장이 가난하게 느껴졌다. 시인 도종환의 시집은 「담쟁이」가 실린 『당신은 누구십니까』가 유일했다. 시인의 등단 30주년 기념시선집으로 대표시 99편을 선한 『밀물의 시간』이 눈에 뜨였다. 시인 공광규는 『말똥 한 덩이』로, 시인 김근은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로,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이 시집 저 시집에 실린 작품해설로 눈에 익었다. 엮은이에서 시인 김성규가 낯이 설었다. 시인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었다.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로 시작되는 「鄕愁」의 정지용과 동향이었다. 표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창비, 2013)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언덕에서 수박을 떨어뜨린..

아차도의 목선(木船)

위 이미지는 강화도와 서도 군도(群島)를 하루 두 번 오가는 여객선 삼보12호 선상에서 잡았습니다. 오후 2시배가 정박지 주문도에서 출항하여 아차도를 거쳐 볼음도로 향하는 내해(內海) 입니다. 목선을 부리는 주민수가 아차도 4분, 주문도 2분, 볼음도 1분이 서도(西島)의 전부입니다. 가장 작은 섬인 아차도가 가장 많은 목선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한때 길거리의 강아지도 배추잎사귀(만원권)를 물고 다녔다는 파시가 섰던 옛 영화의 반증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적 여건이기도 합니다. 아차도의 논 면적은 채 만평도 되지 못합니다. 농가소득이라고 야트막한 산자락을 일군 밭의 고구마와 고추로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섬의 막내가 환갑이 넘었습니다. 목선의 부부어부가 그물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눈치 빠른 갈매기들..

까마귀 이제 바다를 넘보다.

“이만하게 자랐겠는 걸.” 어머니가 큰 호박을 움켜잡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저녁산책이었습니다. 무려 5개월 만에 녀석을 다시 만났습니다. 4월 중순 대빈창 제방길이 바위벼랑에 막힌 외진 곳. 어머니는 녀석이 발붐발붐 집을 나왔다가 길을 잃어 돌아가지 못했다고 쯧쯧 혀를 차셨습니다. 대빈창 제방길을 가파른 산비탈이 바투 따라가다 바위벼랑이 한굽이 바다를 막아섭니다. 제방과 이어지는 산자락은 온통 아카시나무가 뒤덮었습니다. 아카시와 참나무, 칡과 머루, 키 작은 관목과 사람 키를 웃자란 들풀로 신록이 울창한 산속으로 녀석이 몸을 숨겼습니다. 안경을 쓴 것처럼 눈가에만 둥그렇게 검은 무늬가 박힌 흰 토끼는 덩치가 그대로였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녀석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토진아!” 하지만 녀석은 들은체만체 ..

갈매기가 날씨를 예보하다

청개구리가 울면 비가 온다. 달팽이가 길 위에 나와 있으면 비가 온다. 제비나 잠자리가 땅위를 낮게 날면 비가 온다. 물고기가 물 위로 입을 내놓고 숨을 쉬면 비가 온다. 개미가 줄을 지어 지나가면 비가 온다. 두더지들이 한꺼번에 땅을 파면 비가 온다. 두꺼비가 떼 지어 나타나면 비가 온다. 지렁이가 땅위로 올라오면 비가 온다. 오리가 수면에서 날개를 쉬지 않고 퍼덕이며 자맥질을 하면 틀림없이 비가 온다. 우리 선조들은 동물들의 이상행동을 지켜보면서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고,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 동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감각으로 자연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여 재앙을 피합니다. 무시무시한 대지진이 터지기 전 동물들은 미리 진앙지를 벗어나 목숨을 구했고, 세상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한 거대한 쓰나미도 동..

갈매기도 도시인을 좋아한다

파란 바다가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사진의 바다는 분명 동해가 아닌 제가 거주하는 주문도 앞 바다로 황해입니다. 물빛이 맑고 파란 것으로 보아, 조금 때 찍은 사진입니다. 오후 2시 출항을 앞두고 주문도 선창에 배를 대는 정경입니다. 12호는 톤수가 393T, 정원은 400명, 차량은 42대를 적재할 수 있는 작지 않은 카페리입니다. 뱃전의 섬처럼 보이는 봉우리는 꽃치입니다. 분명 먼 옛날에는 작은 무인도였을 것입니다. 한강의 퇴적작용으로 모래가 쌓이면서 자연적으로 아차도와 연결되었습니다. 배 뒤로 길게 늘어선 섬이 3대 관음도량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입니다. 주문도에서 본도인 강화도까지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주문도 앞바다에 정박한 배는 아침 7시에 출항, 아차도, 볼음도를 들르고, 곧장 강화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