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파 11

훔쳐가는 노래

책이름 : 훔쳐가는 노래지은이 : 진은영펴낸곳 : 창비 3주 간격으로 뭍에 나갈 때마다 군립도서관에 둘러 책을 대여했다. 여덟․아홉 권의 빌린 책 중에 한두 권의 시집을 챙겼다. 나의 독서여정에서 한 달에 두세 권의 시집을 펼치게 된다. 나에게 시집은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온라인 서적을 통해 손에 넣는 십 여 명의 시인. 도서관에 시집이 비치되어 있으면 대여하는 시인. 그 외 관심 밖의 시인일 것이다. 시인은 두 번째 부류에 속했다. 그의 첫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은 군립도서관에서 빌렸다. 신생도서관 《지혜의숲》에서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를 빌렸다. 《길상작은도서관》의 근작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대여목록에 올렸다.시인은 2000년 『문학과사회』 봄호에 ..

Love Adagio

책이름 : Love Adagio지은이 : 박상순펴낸곳 : 민음사 《문학과지성사》의 시집 재출간 시리즈 〈문학과지성 시인선 R〉의 첫째권이 2012년에 선보였다. 나는 그때 시리즈를 한 권씩 사서 모았다. 1996년 《세계사》에서 펴낸 박상순의 두 번째 시집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의 재출간을 알렸다. 1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온라인 서적 검색창에 시인의 이름을 입력했다. 시인의 첫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가 살아있었다. 시인과의  첫 인연이었다.빨간색 테두리를 한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드디어 재출간되었다. 그해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난다, 2017)이 13년 만에 나왔다. 나는 재출간 시집을 손에 넣었다. 신간 시집은 언제라도 잡겠지하는 심정으로. 군립..

에코의 초상

책이름 : 에코의 초상 지은이 : 김행숙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마지막 시편과 해설 첫 쪽이 마주보는 면이 펼쳐졌다. 수많은 시집을 잡았으나, 시적 이해력이 형편없었던 나는 해설부터 읽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손에 붙은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트레이드마크는 표지그림의 시인 컷이다. 시인의 모습이 단정해보였다. 눈에 익은 시인․화가 이제하가 아닌 Kivubiro의 컷이다. 촌(?)스러운 이름의 시인을 나는 대중철학자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에서 촉각적 자아의 사랑을 명확히 보여 주었다는 「포옹」이라는 시로 알게 되었다. 마침 신생도서관의 시집 코너에 『에코의 초상』이 책등을 내보이고 있었다. 시인 김행숙(金幸淑, 1970- )은 1999년 『현대문학』으로 문단에..

여장남자 시코쿠

책이름 : 여장남자 시코쿠 지은이 : 황병승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신경림, 이시영, 이재무, 공광규, 이문재, 최승호, 고재종, 장석남, 함민복, 이정록, 손택수, 문태준, 이세기, 박성우······. 손이 쉽게(?) 다가간 시집의 시인들이다. 나는 시나 소설이나 문학에 있어 고전적인 독자층에 속할 것이다. 시집은 펼치자마자 당황스럽고 불편했다. 평자들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시라고 말했다. 전과자, 여장남자, 트랜스젠더, 오럴 섹스, 에로틱, 실어증 환자, 아웃사이더 ······ 등 전통 시문법과는 한참 거리가 먼 시어들로 가득했다. 2003년 계간 『파라 21』로 문단에 데뷔한 시인은 등단 2년 만에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코리아, 2005)를 상재했다. 이어 두세 번째 시집 ..

밤이 선생이다

책이름 : 밤이 선생이다 지은이 : 황현산 펴낸곳 : 난다 “소설가 김도연과 나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내가 강원도의 한 대학에 재직하고 있을 때 그는 내가 속한 불문학과의 학생으로 가끔 내게 소설 습작 원고를 들고 왔다.” 소설가 김도연의 첫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해설 도입부다. 내가 처음 접한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글이었다. 90년대 중반 한 지방지 신춘문예 결선에 오른 세 작품 중 하나가 나의 습작 소설이었다. 등단의 영예를 안은 작가는 2000년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표제작으로 첫 소설집을 내었고, 해설은 학문적 스승인 문학평론가의 글 「자연의 비극과 시간의 소극」이었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불문학자·번역가·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가 4년..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책이름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지은이 : 김경주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무림일기』, 『여장남자 시코쿠』,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견딜 수 없네』, 『환상수족』, 『나는 너다』, 『기억이동장치』, 『겨울밤 0시 5분』,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 『분명한 사건』, 『어느 별의 지옥』 각 출판사의 품절된 시집의 재출간 소식은 뒤늦게 시집을 손에 펴든 나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절판된 시집을 복간하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R〉 시리즈가 열두 권 째를 펴냈다.〈문학과지성 시인선〉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는 표지의 시인 컷 그림이다. 〈문지 시인선 R〉은 시인의 컷 그림이 앞날개로 옮겨왔다. 나는 이중 다섯 권을 손에 넣었다. 시집의 초판본은 2006년..

정오의 희망곡

책이름 : 정오의 희망곡 지은이 : 이장욱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집 : 『내 잠속의 모래산』(민음사, 2002),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 2006), 『생년월일』(창비, 2011), 『천국보다 낯선』(민음사, 2013),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것』(문학과지성사, 2016) 소설집·장편소설 :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장편소설/작가수첩, 2005), 『고백의 제왕』(소설집/창비, 2010), 기린이 아닌 모든 것(소설집/문학과지성사, 2015) 이론·평론집 : 혁명과 모더니즘(문학이론/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문학평론집/ 창비, 2005) 문단의 멀티 플레이어, 팔방미인,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불러야 마땅할 것 같다. 하나도 하기 어렵다는 일을 그는 세 가지를 치..

환상수족

책이름 : 환상수족 지은이 : 이민하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집은 「시인의 말」 두 편, 4부에 나뉘어 실린 59 시편, 문학평론가 허윤진의 해설 「색채의 배합에 대한 연구」, 「기획의 말」로 구성되었다. ‘20세기 후반기에 출판되었다가 다양한 사연으로 절판되었거나 출판사가 폐문함으로써 독자에게로 가는 통로를 차단당한 시집’(152쪽)이 《문학과 지성 시인선 R》을 통해 복권되고 있다. 현재까지 복권(?) 시리즈는 9권까지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그중 7번째다. 시인의 첫 번째 시집으로 2005년 〈열림원〉에서 초간본이 나왔다. 10년 만에 다시 독자를 찾았다. 표제시 「환상수족」의 각주는 - *환상수족phantom limb : 사고나 수술 등으로 수족이 절단된 후에도 없어진 부위가 아직 존재하는 것처..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책이름 :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지은이 : 김민정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마시는 남자의 목에 걸린 금줄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불광동 개고기집, 입대 전날 아빠의 동정이 묻힌 학익동 옐로우하우스, 초미니스커트를 입었지만 허벅지에 신신파스를 붙인 소녀, 이웃 아낙네와 수다를 떨다 순간 터져 버린 엄마의 멘스, 오줌을 누고 밑을 딱은 휴지에 묻은 빨간 고춧가루 한 점, 여선생한테 섹스가 좆나 하고 싶어서 결혼하느냐고 묻는 초등6년 남자 어린이들, 스페인 여행 중 오줌이 흘러넘치는 열차바닥에 앉아 어깨동무를 풀지 않는 흑인 남자와 백인 소녀 커플, ‘나는 네미 씹할 왕자지’라는 코팅된 문구를 룸미러에 달고 다니며 승객에게 보여주는 바람나 도망 간 파마머리 아내에 이를 가는 택..

육체쇼와 전집

책이름 : 육체쇼와 전집 지은이 : 황병승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천민자본주의 체제에 어깃장을 놓는 고난의 생태적 자급자족 삶을 살던 젊은 아나키스트 부부가 섬을 떠났다. 남편은 중앙대 연극과, 아내는 인터넷 진보신문 기자 출신으로 3년 전 볼음도에 처음 발을 디뎠다. 윤구병 농부철학자가 일구었던 변산 공동체에서 농사를 배웠고 강화도를 거쳐 민통선 섬 볼음도에 정착했다. 나에게 좋은 말동무였다. 그네들은 나를 황송하게 낙도오지의 진보주의자로 대접했다. 주일에 한두 번 볼음도에 건너갈 적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 대했다. 젊은 부부는 고향 강릉으로 이사를 앞두고 주문도 나의 집을 찾았다. 주문도 나들길을 걷고, 선창 식당에서 점심을 하는 약속을 잡았다. 하늘은 우리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풍랑으로 배가 결항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