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 30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9

토진이가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오랜만에 길가에 나와 마음껏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들고양이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지 모르겠습니다. 토진이 아지트에 얼씬거리던 검은 바탕에 흰 반점의 고양이와 노란 바탕에 줄 무늬 녀석이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영리한 토진이가 놈들의 행동반경을 미리 파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토진이가 나이가 들수록 조심성만 늘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던 녀석이 뒤돌아서 산기슭으로 깡총깡총 뛰어 달아납니다. 녀석에게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지 경계심을 풀고, 여린 새싹에 코를 박고 폭풍흡입 중입니다. 오랜만에 토진이의 선명한 이미지를 건졌습니다. 토진이가 만 다섯 살이 넘었습니다. 토진이의 귀토야생(歸兎野生)은 한마..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8

야생 진드기는 알에서 부화한 후에 유충, 약충, 성충의 3단계로 성장합니다. 각 단계는 일 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유충이 약충이 되기 전, 약충이 성충이 되기 전, 성충이 알을 낳기 전, 일생에서 세 번은 반드시 온혈동물의 피를 흡입합니다. 야생 진드기의 세 번의 숙주(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는 모두 포유동물입니다. 나무나 풀에서 살다, 온혈 동물의 열을 감지하면 튀어 올라서 숙주에 달라붙습니다. 숙주의 피부가 노출된 곳, 물만한 곳을 찾아 피부를 뚫고 주둥이를 살 속으로 삽입합니다. 물어도 아프지 않아 숙주는 진드기가 물었다는 사실을 며칠씩 모른다고 합니다. 북서향이라 풀이 늦게 돋는 토진이의 아지트에 벌써 진드기가 나타났습니다. 진드기는 본능적으로 토진이의 몸을 타고 올라가 뒷목 중앙..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6

봉구산자락을 따라가는 옛길을 걷습니다. 다랑구지 논들이 수확을 마쳐 환해졌습니다. 기러기 떼가 알곡을 주워 먹느라 논바닥에 새까맣게 앉았습니다. 녀석들은 주문도에서 겨울을 나고, 낮이 점점 길어져 햇살이 쏟아지는 절기가 돌아오면 자신의 고향을 향해 날개를 펼치겠지요. 가을걷이가 끝난 섬 풍경은 쓸쓸하다 싶을 정도로 황량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고구마 밭은 황토가 그대로 드러났고, 고춧대는 선채로 누렇게 말라갑니다. 바닷물 철썩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다가 많이 부풀었습니다. 사리 물때입니다. 제방 길 왼편 산날맹이는 손을 베일 것처럼 날카롭습니다. 오랜 세월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깎였겠지요. 잡목 숲은 추운 계절을 준비하느라 스스로 제 몸의 수분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산사면의 관목을 칡넝쿨..

대빈창 다랑구지의 가을걷이

열흘의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위 이미지는 연휴의 막바지 대빈창 다랑구지의 이른 아침 풍경입니다. 평소처럼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봉구산 자락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로에서 바라 본 들녘입니다. 아침 해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봉구산을 넘어 온 햇살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해병대 순찰차량이 해안을 향해 중앙농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대략 시간은 7시경입니다. 산자락 밭의 김장채소가 푸르렀습니다. 배추는 속이 차가고, 무는 밑동이 튼실하게 여물었습니다. 밭 모서리마다 들깨 단이 묶여 세워졌습니다. 순을 제거하고 고구마를 캐느라 추석을 맞아 고향 섬을 찾은 가족들이 밭에 허리를 굽혔습니다. 고춧대도 뽑아서 밭 한편에 쌓았습니다. 날씨가 차지면 바람 없는 날을 잡아 소각시키겠지요. 바다..

성난 대빈창 해변

대빈창 해변 바다가 사나워졌습니다. 바닷물이 제방위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작은 해일(海溢, surge)이 일어난 것 같았습니다.지난 8. 22 ~ 24. 3일간은 대조기로 해수면이 950mm까지 치솟았습니다. 새벽 산책에서 만난 정경입니다. 토진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까시숲에 몸을 사리겠지요. 반환점 벼랑에 하이파이브도 못하고 저는 오던 길을 되돌아섰습니다. 해일은 바닷물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육지로 넘쳐 들어오는 현상입니다. 원인은 지진과 폭풍 해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는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곧이어 들이닥친 거대한 쓰나미(津波, tsunami)가 원인이었습니다. 이 땅의 돈 버러지들 핵 마피아는 문재인 정권의 탈핵정책에 반대하..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4

왼쪽 이미지가 토진이가 사는 터에 이르는 제방 진입로입니다. 느리 선착장에서 강화도를 하루 두 번 오가는 카페리에서 내립니다. 서도면사무소, 보건지소, 파출소가 자리 잡은 느리 마을입니다. 바다를 보며 일렬로 늘어 선 선창 집들을 지나 하얀쪽배 펜션을 오른편에 끼고 100여m 걷다 다시 우회전하면 야트막한 고개가 나타납니다. 고개를 내려서면 다랑구지 들녘입니다. 들녘 가운데 농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면 멀리 해송 숲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른쪽은 다랑구지를 바라보는 대빈창 마을집들이 일렬로 늘어섰고, 왼쪽은 낮은 구릉이 바다를 가렸습니다. 만조시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서해의 수평선을 볼 수 있습니다. 식재 된 해당화 군락지를 지나면 화장실, 수돗가, 쓰레기장이 설치된 대빈창 해변 야영장입니다. 폭이 좁고 긴 ..

조개골과 대빈창은 닮았다.

주문도는 서도에서 가장 높은 봉구산이 섬 중앙에 자리 잡았습니다. 볼음도는 높지않은 구릉들이 섬을 에워쌓았습니다. 지형이 주문도는 남성을, 볼음도는 여성이 떠올려집니다. 주문도의 대빈창은 바다를 향해 툭 터진 반면 볼음도의 조개골 해변은 E자 형국으로 북유럽의 피요르드를 닮았습니다. 두 섬은 다행히 대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볼음도저수지 제방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4호로 수령이 800여년이나 되었습니다. 주문도의 서도중앙교회는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4호로 100년 전 한옥양식으로 지어진 기독교 초창기 건축물입니다. 이미지는 황해(黃海)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바닷물이 코발트색입니다. 분명 물때가 조금입니다. 주문도 대빈창과 볼음도 조개골 해변은 서향으로 앉았습니다. 강화..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3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 ○ ○날 우리들 세상 ○ ○ ○를 산토끼로 바꾸어야겠습니다. 흥이 절로 나는 오월이 돌아왔습니다. 대빈창 해변의 제방 끝 삼태기 지형의 가파른 벼랑에 색이 점차 짙어갔습니다. 절기에 둔감한 이곳도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입니다. 풀과 나무가 연두에서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아까시가 가지에서 새순을 틔우고 경쟁이나 하듯 허공에 오므렸던 잎을 펼칩니다. 으름덩굴은 하루가 다르게 줄기를 뻗어 나갑니다. 제가 입을 오물거리며 섭식하는 것은 으름덩굴의 잎입니다. 정확히 제 나이는 만 네 살입니다. 4년 전 저는 오일장에서 만난 새로운 주인 손에 이끌려 오빠와 함께 이곳 섬에 왔습니다. 주인은 평일에 뭍에..

고라니는 쓸개가 없다 - 2

- 어떤 처지에 있는지 모르는 고라니의 멍청한 짓은 쓸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스개로 들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말, 노루, 고라니 등 풀만 먹는 초식동물은 담낭(膽囊)이 없습니다. - 2012년 7월 초에 올린 글의 마지막입니다. 엊그제가 입동이었습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 서둘러 저녁산책에 나섰습니다. 이미지는 다랑구지 들녘을 지나 대빈창 해변의 초입입니다. 해안을 따라 가늘고 기다랗게 방풍림이 조성되었습니다. 숲 바닥은 조금만 파도 모래가 나옵니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타고 모래가 사구를 형성했습니다. 35여 년 전 가난했던 시절. 한 뼘의 논이라도 늘릴 심산으로 제방을 쌓고, 해송을 심어 바람을 막았습니다. 숲에서 새끼 고라니가 해변 가는 길 위로 먼저 튀어 나왔습니다. 녀석은..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1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여자를 상아로 조각하여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여인상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런 여인과 결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에 아프로디테가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고, 피그말리온은 인간이 된 그 여인상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Daum 백과사전에서) 이에 무언가에 대한 사람의 믿음, 기대, 예측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을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라고 합니다. 아침 산책에서 위 이미지를 건져 집으로 돌아오며 떠올린 그리스 신화입니다. 토진이가 조각상처럼 사석더미위에 그럴듯하게 포즈를 잡았습니다. “나 요기 올라왔으니까, 사진 찍어 줘.” 사진을 보신 어머니의 말씀이십니다. 어머니는 주변 짐승들인 진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