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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여행

책이름 : 은밀한 여행 지은이 : 이용한 펴낸곳 : 랜덤하우스코리아 위 책 이미지에서 왼편 귀퉁이에 세로로 쓴 작은 글씨의 문구는 '길 위의 시인 이용한의 소금처럼 빛나는 에세이'다. 그렇다. 시인은 10년 전에 등단하지만 '정신은 아프다'와 '안녕 후두둑 씨' 2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아마, 시집에 실린 시편들도 대부분 여행길에서 건져올린 편린들로 짐작된다. 시인은 고백한다. 막상 다니던 잡지사를 때려 치고 방랑과 방황의 길 위에 서니, 호구지책이 절실해졌다. 그러기에 시인이 그동안 펴낸 여행서는 쌀을 사고,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경비로 지출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본업인 시인보다는 분업인 여행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시인은 중고 4륜구동 지프에 카메라와 비상식량인 초코파이와 바나나 우유를..

노성두 이주헌의 명화읽기

책이름 : 노성두 이주헌의 명화읽기 지은이 : 노성두·이주헌 펴낸곳 : 한길사 나의 블로그 '대빈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저자는 단연 서양미술평론가 이주헌이다. 이 책 '노성두 이주헌의 명화읽기'는 띠지에서 강조했듯이 두 라이벌(?)이 한권의 책을 묶었다. 나의 편집증적 기질은 유난히 이주헌의 글을 탐했지만, 같은 분야에서 노성두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두 저자는 미술 분야의 대중적 글쓰기의 쌍두마차라 할 수 있다. 미술의 본류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해석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있는 미술 교양서 부분의 독보적인 자리를 양분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확실한 고정 팬을 보유한 글쓴이들로, 나도 이주헌의 저작물을 거의 다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두 저자의 천성과 태생, 가치관이..

의식각성의 현장

책이름 : 의식각성의 현장 지은이 : 조동일 펴낸곳 : 학고재 길들여진 습관은 벗어나기가 힘들다. 여느 때처럼 온라인 서적에 들어가자마자 검색창에 '학고재'를 두드린다. 온갖 종류의 답사기를 섭렵한지라 식상하기 마련인데도 '의식각성의 현장'이라는 무게가 느껴지는 표제에 마음이 끌린다. 더군다나 신뢰하는 출판사에, 저자가 국문학의 태두 조동일이다.. 책씻이를 하고나니 미련없이 주문하길 잘했다는 자기위안이 든다. 조동일이 누구인가. 국문학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한국문학통사'의 저자이다. 현재는 4판까지 찍어냈지만, 나는 '94년에 발간된 3판 6권짜리 양장본을 소장하고 있다.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단절이라는 거대한 화두에 매달려, 역사변환기의 문학 양상을 고찰하고, 전통사회의 기층문학을 포용해 역사와 ..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책이름 :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지은이 : 박노자 펴낸곳 : 한겨레출판 오랜만의 흡족한 책읽기였다. 내가 알고있는 이 땅의 대표적 좌파 논객은 홍세화, 김규항이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 책으로 접하게 된 박노자를 가장 윗길에 놓아야겠다. 박노자는 한국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논리로 비판적 안목을 갖춘 독자들에게 인기스타였다. 나는 매번 온라인 서적에 들어가 가트에 박노자의 저작을 담았지만, 결정적으로 주문 시에는 삭제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칼럼집이 갖추어야 할 시의성이 문제였다. 항상 때를 놓치다가, 운 좋게도 따끈따끈한 최근 칼럼집을 손에 넣자마자 서둘러 책씻이를 했다. 하지만 400여쪽에 불과한 분량이지만 내용의 깊이는 만만치가 않아 근 보름여 간 책을 손에서 놓을 ..

핑퐁

책이름 : 핑퐁 지은이 : 박민규 펴낸곳 : 창비 작가 이외수는 박민규의 소설모음 '카스테라'의 추천평에서 신진작가를 이렇게 극찬했다. '대한민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 하나를 지목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박민규라는 작가의 출현을 지목하겠다.' 정말 극찬의 도를 넘어서 문단의 선배가 후배에게 드리는 찬양으로 들릴 정도다. 어떻게 이런 평이 가능한 것일까. 나름대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는 없는 것일까. 박민규의 소설은 우선 재미있다. 책을 들면 손에서 떼어놓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실험적이다 못해 전위적인 문장력, 새로운 감각과 재치에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한 착상이 한데 어우러져 일으키는 흡인력이다. 또한 이외수와 박민규는 기인적인 행동으로 눈길을 끄는 문학 외적인 쇼..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책이름 :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지은이 : 최재천 펴낸곳 : 궁리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연과 인간'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학문의 출발지 그리스에서는 이에 대해 연구하는 '자연철학'이 곧 학문의 출발점이 되었다. 자연철학은 '자연의 기원과 존재 그리고 운행원리에 대해 연구하고, 얻은 지식을 학습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과학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지식(scientica)에서 유래한 말로 근세에 자연철학은 여러 갈래로 분과되었다. 즉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을 가리킨다. 책을 가까이한 지 20여년이 되었다. 80년대는 전공분야를 불문하고 모두가 사회과학도였다.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중압감이 혈기 넘치는 청년들에게 부과한 과제로, 아니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역사적 임무였기 때문이다. ..

산천을 닮은 사람들

책이름 : 산천을 닮은 사람들 지은이 : 고은외 그린이 : 김정헌외 펴낸곳 : 효형출판 보름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삼우제를 지낸 한적한 늦가을 오후, 마음이 허해진 나는 책장을 둘러 보았다. 손에 잡던 책들은 외딴 섬에 있는지라, 책장에는 삼년 전에 읽었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아무 책이나 꺼내 갈피를 뒤적이다가, 화가 김정헌의 ' 백두산을 지키는 김씨'라는 도판이 눈에 들어와 10여년 만에 다시 '산천을 닮은 사람들'을 손에 잡았다. 백두산이 엷은 푸른색으로 배경에 자리잡고, 정면 중앙에 흙색의 굵은 선으로 삽자루를 움켜쥔 농부가 그려진 그림이다. 한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온 아버님이 연상되었을까. 아니면 '땅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든다.'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철학을 떠올리며 다시 그 산천으..

화첩기행과 모노레터

책이름 : 화첩기행 3 / 김병종의 모노레터 지은이 : 김병종 펴낸곳 : 효형출판 화첩기행 1과 2는 각각 '예의 길을 가다'와 '달이 뜬다, 북을 울려라'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고향을 어찌 잊으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화첩기행 3은 천재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기행문의 해외편이다. 내용은 14명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예술혼의 주무대였던 세계의 도시들이 짝을 맞추었다. 문인으로 전혜린, 이미륵, 아나톨리 김, 윤동주, 김우진이 있고, 음악인으로 윤이상과 루드밀라 남 그리고 빅토르 최, 최건, 윤심덕이 등장한다. 영화인 김염과 무용의 최승희, 미술가로 이응로와 도예가 이삼평, 유일하게 한민족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더 뜨겁게 조선을 사랑해 조선의 혼이 되고자 망우리에 묻힌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가 있다...

소설 이천년대

책이름 : 소설 이천년대 지은이 : 박민규외 엮은이 : 민족문학연구소 펴낸곳 : 생각의 나무 '전망없는 청춘들이 쏘아올린 상상력의 폭죽, 이천년대' 뒷장 표지에 실린 표사의 고딕체 글자다. 그렇다. 폭죽은 현실의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다. 나는 2000년대라는 시대 가름으로 우리의 소설을 얘기할 때, 요즘 발표되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뭔가 허공에 발을 헛디디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근대적 일상의 억압 구조를 차분하게 음미하지 않고 늘 꼭지점을 향해 달려나가는 욕망을 표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이천년대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젊은 비평가들의 모임인 '민족문학연구소'가 시대별로 소설 경향을 알아볼 수 있도록 꾸민 앤솔로지다. 민족문학연구소는 '비평과 문학 연구를 생산적으로 ..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책이름 :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지은이 : 박영근 펴낸곳 : 창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치고 한번쯤은 흥얼거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본격적인 집회나 행사의 전야제에서 민중가수 안치환의 노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세상도 많이 변했다. 90년대에는 공중파 방송의 음악회에서 전파를 타더니, 21세기에는 힙합그룹의 래퍼에 의해 읊조려지기까지 한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투쟁 현장에서 살벌한 분위기가 빚어내는 긴장을 완화시키고, 우리는 하나라는 연대감을 고취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노래로, 70년대에는 상록수가 있었다면, 80년대에는 단연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꼽..